국민의 정부, 카드대란

신용카드 활성화 방안은 딱 한 번만 쓸 수 있는, 그리고 그냥 흘려 보낼 뻔한 극약 처방이었다.

국민의 정부는 그 상황에서 딱 한 번만 쓸 수 있는 이 처방을 선택했고

시중엔 돈이 돌았고, 국민은 돈의 본질을 학습했다.

이 처방은 당분간 효력이 없을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라면
지금과 같은 새로운 상황에서 어떤 처방을 내렸을 지 궁금해진다.

   이제야 눈물이 난다.

김대중 전 대통령님이 돌아가시기 전 일주일,
굳게 다문 입을 열어 그에 대한 나의 열렬한 마음을 글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자꾸 일었다.
하지만, 미루다가 한 줄도 써보지 못하고 그의 임종을 보고야 말았다.

어쩌면 내게는 예견된 일이었던 같다.
그래서인지, 그의 임종을 들었을 땐 오히려 의연했다.

오늘 그의 영결식을 보면서,
이제야 눈앞이 흐려진다.

미몽에 갇혀 있던 젊은 시절
전설처럼 떠돌던 그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나는 언제 부턴가 그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

지금 이 순간까지 그러한 나의 관찰앞에
그는 한치의 오점도 나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남들에게 오점으로 보이는 것 마저
좀 더 깊이 들여다 보면, 이유가 있는 것들이었고
그 이유는 오로지 한군데를 향한 것이었다.

....

가시는 길이 얼마나 떠들썩하고 화려한가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내가 보았던 영결식 중에 가장 경건하고 소박한 광경을 오늘 보았다.

화려한 의식은 없었지만,
지금의 나처럼,
어디선간 가슴 속에 그의 마지막 모습을 새기는 사람들이 있었으리라.

의연한 가족들의 모습,
원없이 자신을 불태운 사람을 보아온 이들은,
오히려 이 순간, 안도할 지도 모른다.
오히려 자신은 괜찮은데, 옆에서 그의 모습을 보는 이가 더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이제야 저분의 고통스런 모습을 안봐도 되겠구나."

미화할 필요도 없다.
애도를 과장할 필요도 없다.

그의 삶 자체가 가시밭 길이었듯이
그의 죽음도 화려하지 않고, 평범하고, 소박하게,
하지만 경건하고 숙연하게 진행되었다.

슬퍼할 사람은 슬퍼하고,
안타까워 할 사람은 안타까워 하고,
시원해 할 사람은 시원해 할 것이다.

나는 그가 마침내 안식을 찾게 되어서 어쩌면 기뻣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나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느꼈던 것과 같다.

하지만 날이 가면서
왠지 모를 설움과 북받힘에 뒤늦게 펑펑 눈물을 쏫는다.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
    "현미경처럼 세세하게 보고 망원경처럼 멀리 봐라."

어느 누가 이렇게 빈틈이 없는 경구를 들려 줄까.
실, 누구에게 들려 주려는 것 보단 아마 스스로 마음을 다잡기 위한 경구일 것이다.
실제로 그는 세세하게 보고 멀리, 넓게 보았으니까.

고난이 그를 단단하게 하고, 생각의 깊이를 깊게 하고...
어찌보면 당신은 현대사의 진정한 주인공 이었는지도 모릅니다.

...

당신이 늘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이라고 불렀듯
나는 "존경하고 사랑하는 대통령님" 이라고 불러 봅니다.

안녕히 가세요.
사랑합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

   마음의 짐을 내려 놓다.

어쩌면 마지막 남은 마음의 짐이었는 지도 모른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돌아가셨다."

그를 알아 가면서, 알게 되면서,
그에게 퍼부어지는 이해불가의 말들을 가까운 사람들의 입을 통해 들으면서
나는 색다른 슬픔을 느껴야만 했고, 마음의 짐을 느껴야 했다.

...

이젠 그 마음의 짐을 내려 놓으려 한다.

그는 훌륭했고, 강인했고, 부드러웠고, 일관되었고, 따듯했다.
그는 한 인간이 견디기엔 너무나 큰 고통과 좌절도 잘 견뎌 내었고
한 인간이 한 생애에서 할 수 있는 그 이상의 일을 해 내었다.

그는 투사(鬪士)이면서 동시에 현인(賢人)이였다.

이제 영면에 드셨으니 그에 대한 나의 연민과 미안함을 내려 놓으려 한다.
이제 그에 대한 존경심과 사랑만을 남겨 두려 한다.

이제 편히 쉬세요.

    "당신으로 인해 괴로웠으며 행복했으며 미안했으며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약간은 두려운 마음도 없지 않다.
존경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에서의 삶이란 어떤 것일지...

   그랜토리노 (Gran Torino)

오랜만에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영화로 보게 되었다.

그 특유의 강인하면서도 매서운 눈빛 속에 깃들여 있는 개구장이스럽고 따스한 느낌은 뭐랄까 ...
설명하기 힘들다.

"그랜토리노"

제목이나 포스터만 봐서는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엔 약간은 부족해 보였지만 어쨋든 보게 되었고,
그리고 밀려오는 복잡한 감정들.

선의지의 실현이 정말 쉽지 않다.
때로는 스스로 죽음까지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히기도 한다.
불치병에 걸려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과 스스로 죽음에 뛰어드는 것은 많이 다르다.

악인이 되기는 손바닥 뒤집듯 쉬우나
선의 실현을 위해선 때론 죽음마저도 불사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삶이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가슴이 찢어진다.

나는 그를 사랑한 적도 없고 좋아한 적도 없건만
왜 이리 가슴이 찢어지는 것일까.

강할줄로만 알았던 그이기에
이런 일이 있으리라는 생각은 한번도 하지 않았기에 그 충격이 크다.

그토록 힘들고 괴로웠단 말인가.

이제서야 그의 진정성을 본 듯하여 안타깝기도 하다.

그의 죽음이 이토록 나를 당혹케 하고 가슴을 찢어지게 하는 것을 보니
나는 그를 겉으로는 무시하고 있었지만 내면으론 사랑하고 있었나 보다.

말하는 걸 좋아하는 그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 마지막 수단이 이런 것밖에 없었다는
그 절박함에 눈앞이 흐려진다. 가슴이 미어진다. 가슴이 무너진다.

왜 이토록 선한 영혼에게 주어지는 현실은 가혹한 것인지
신이 있다면 한번 물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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